[천자 칼럼] 한국의 '문화 대통령' 2020.12.11 1960~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출발해 '시대의 상징'이 됐던 통기타 음악가들은 대부분 팝송이나 번안곡을 불렀다. 송창식은 '케세라'를 읊으며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나길 갈망했고, 조영남은 '마이 마이 마이 딜라일라'로 목청껏 사랑을 노래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에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덧입힌 김세환은 수많은 청춘의 눈길을 밤하늘로 돌렸다. 가난했던 시절, 외국 것이라면 무조건 멋있어 보였다. 심수봉은 러시아 민요에서 '백만 송이 장미'를 꽃피웠고, 현인은 멕시코 노래에서 '베사메 무초'를 따왔다. 트로트는 일본 엔카(演歌)의 아류로 펌훼되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런 여건에서 한국인이 '문화 종주국'이 된다는..